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강렬한 소설이다. 원인 모를 전염성 실명 현상이 발생하며, 사회는 급격히 붕괴한다. 질서가 사라진 도시에서 인간은 본능적인 생존 욕구와 도덕적 선택 사이에서 갈등한다. 소설은 문명이 붕괴하는 과정과 인간 본성이 드러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독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가? 아니면 결국 본능적 생존을 위해 타인을 짓밟게 되는가?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1. 문명의 붕괴,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사회
소설은 한 남성이 신호를 기다리던 도중 갑자기 실명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단순한 암흑이 아니라 ‘우윳빛 백색’의 세계 속에 갇히고, 이후 이 실명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염되기 시작한다. 정부는 사태를 통제하기 위해 감염자들을 격리하지만, 결국 실명의 확산을 막지 못한 채 사회는 빠르게 붕괴한다.
문명은 질서가 유지될 때만 작동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법과 규칙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생존 본능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염된 사람들은 격리된 병동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도둑질과 강탈, 살인이 일어나도 그것을 막을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과 질서의 부재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원시적인 상태로 회귀한다.
이러한 모습은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이나 재난, 팬데믹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우리는 이미 목격한 바 있다. 평범했던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잔혹한 선택을 하게 되고, 도덕적 가치는 점점 희미해진다. 사라마구는 이러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묘사하며, 인간 문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과연 우리는 문명이 유지될 때만 도덕적일 수 있는가?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러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2. 절망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인간은 과연 본능적으로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극한의 상황에서 악한 면이 더 쉽게 드러나는가? 작가는 이러한 질문을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탐구한다.
첫 번째 유형은 인간성을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의사의 아내는 유일하게 실명을 겪지 않은 존재로, 눈먼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숨기면서도, 끝까지 도덕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녀의 존재는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상징하며,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두 번째 유형은 무기력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황이 악화될수록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며, 타인의 지배에 쉽게 순응한다. 이들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기보다, 단순히 현재의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권력이나 구조적인 폭력 앞에서 저항하기보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다.
세 번째 유형은 폭력과 지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사람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일부 그룹이 식량을 독점하고,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본능적인 욕망을 따라 행동하며, 인간 사회에서 권력과 통제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악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법과 질서가 사라지자, 이들은 무자비한 방식으로 군림하며 약자들을 짓밟는다.
결국, 사라마구는 인간 본성이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평범했던 사람들도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우리는 문명의 보호 아래에서는 윤리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도덕적 가치가 무너질 위험이 크다. 이 소설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조명하면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3.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희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려는 이들이 있다. 특히, 의사의 아내는 유일한 ‘눈먼 자가 아닌 존재’로서, 혼돈 속에서도 윤리를 유지하려 한다. 그녀는 폭력과 억압이 난무하는 환경에서도 끝까지 도덕적 선택을 하며,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희생한다.
그녀는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인간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가진 선한 본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도덕적 가치를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부 인물들이 시력을 되찾기 시작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는 인간성이 회복될 가능성을 암시하며, 우리가 완전히 야만적인 존재로 퇴보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사라마구는 우리 사회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4. 『눈먼 자들의 도시』가 던지는 메시지
이 작품은 단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 본성과 사회 질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법과 문명이 있을 때만 도덕적일 수 있는가?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성은 유지될 수 있는가?
소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가진 선한 본성과 연대의 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윤리를 지킬 수 있는가? 아니면 결국 야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가? 이 소설은 이러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남긴다.
결론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 본성이 시험받는 순간을 그린 강렬한 작품이다. 사라마구는 인간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면서도, 희망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든 ‘눈먼 자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 소설은 인간성과 도덕, 사회 구조의 취약성을 탐구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은 존재할 수 있는가? 사라마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 스스로 찾도록 만든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이자 희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