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과학 서적이 아니다. 이 책은 과학과 인생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믿어온 질서와 체계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탐구한다. 저자는 19세기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연구를 중심으로, 분류학이 가진 신념과 그 붕괴 과정을 조명한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삶과 연결하여,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고민한다. 과학적 발견과 철학적 성찰이 어우러진 이 책은,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의 틀이 깨질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1. 질서를 믿었던 한 과학자의 비극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중심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생물학자로서 세상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려 했으며, 특히 물고기의 분류에 집착했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천 종의 물고기를 채집했고, 자신의 연구를 통해 자연의 질서를 확립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큰 도전에 직면한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인해, 그가 평생 연구하며 분류해온 수많은 물고기 표본이 한순간에 파괴된 것이다.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 강한 의지로 연구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가 믿었던 체계와 질서는 점점 더 불확실해져 갔고, 결국 그는 과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문제적 인물로 평가받게 된다.
조던은 우생학을 지지하며, 인간 사회에서도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우생학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우생학이 얼마나 위험한 개념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그의 신념은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으며, 과학이 반드시 윤리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던의 이야기는 우리가 신뢰하는 체계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새로운 발견이 기존의 이론을 뒤집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어야 하며, ‘절대적인 질서’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2. 혼돈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
룰루 밀러는 조던의 삶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삶이 무질서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을 느꼈다. 그녀는 조던처럼 명확한 질서를 찾고 싶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혼돈이 필연적인 요소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종종 확고한 신념과 체계를 가지려 한다. 하지만 밀러는 이 책을 통해, 질서를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질서를 찾는 것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도 유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특히, 밀러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혼돈을 바라본다. 자연계에서 완벽한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이 변하면 종도 변하고, 생명체는 끊임없이 적응해 나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계획한 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야말로 중요한 삶의 태도일 수 있다.
3.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과학책이 아니라,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우리가 신뢰하는 과학적 사실이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고, 우리가 믿고 있는 체계가 절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밀러는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역시 유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던은 자신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더 강한 신념으로 맞섰지만, 밀러는 오히려 유연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항상 논리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때로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은 ‘질서’와 ‘혼돈’이라는 두 개념을 대비시키면서, 우리가 반드시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완벽한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히려 변화와 유연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철학적 태도다.
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던지는 메시지
이 책의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물고기’라는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으며, 과학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분류 체계가 점점 더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하나의 통일된 그룹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상에서 진화한 다양한 생물군의 집합체일 뿐이다. 즉,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던 개념조차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분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과 체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것들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과거에는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지금은 오류로 판명되듯이, 우리의 믿음 역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며, 변화에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결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신뢰하는 질서와 체계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탐구하며, 혼돈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통해, 우리는 과학적 집착이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배우고, 룰루 밀러의 경험을 통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법을 생각하게 된다.
완벽한 질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변화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발견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